왜 결혼하기로 했냐고 물으신다면
이따금 생각해 봅니다. 만으로 서른 넷, 한국 나이로 서른 다섯 살까지 살아오며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사는 동안 딱히 크게 아프지도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도 않았어요. 생각보다 수능을 조금 못 보긴 했지만 좋은 대학교에 갔고, 생각했던 것만큼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빚을 지진 않았고, 그 결과 무난하게 적금 붓고 보험금 내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제게 네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아마도 옛날에 만나던 친구들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던 것이라 대답할 것 같아요. 우습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그 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 때 한번만 더 삼킬 걸”을 꼭 꼭 씹으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오래 후회하는 사람은 으레 똑같이 후회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결코 화내지 않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아주아주 화가 나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끝내요. 그리고 시간을 조금 보낸 다음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그정도야?”
아내 될 사람과는 2020년 2월에 처음 만났습니다. 매일 맑은 날일 수는 없지요.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답답했습니다. 저는 T고 이 사람은 F에요. 할 말이 없어서 안 했겠습니까. 할 말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그리고 어른은 생각이 감정보다 앞서야 하니까, 곧잘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정말로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아무튼 그래서 화를 냈습니다. 스카이프로 대화하던 도중 퉁명스럽게 말하고,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하여튼 이제까지 응당 ‘어른이라면’ 하지 말아야지 싶었던 것들을 그냥 해 버렸습니다. 될 대로 돼라 싶었나 봐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별 일 없었습니다. 이 느낌을 잘 전달하기가 참 정말 쉽지 않은데, 아무튼 저는 거의 한 10년만에 정말로 화를 낸 거였거든요. 그 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믿어도 되겠구나.
결혼은 기실 아주 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기타 등등이 딸려 오지만 그게 본질일 리는 없고, 핵심은 두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아주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요. 하루에 적어도 여덟 시간, 일년에 적어도 삼백육십 일을 부대낄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답답한 일이 세상 천지에 또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사람과 말이라면 적어도 무슨 말이든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좋은 말 뿐 아니라 나쁜 말도, 기쁜 일 뿐 아니라 화나는 일에 대해서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살면서 어떻게 기쁜 일만 있겠습니까. 어떻게 좋은 말만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이 사람이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습니다.